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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문화가 강해야 사회가 강해져' 백태현 대표

기사승인 2019.05.28  16: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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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건문학사, 강건문화뉴스 발행인 인터뷰

   
▲ 백태현 대표

[프롤로그] 어린시절 서울 용두동에서 구슬치기와 땅따먹기, 흑장난의 소년기를 거쳐 성북구의 용문중, 경동고의 청소년 시절을 보내며 이때 부터 예능의 소질을 발휘하게 된다. 공부를 무척이나 잘했던 그는 음악에 빠지면서 나락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부모와의 갈등, 학교생활의 무기력, 결국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청소년기의 방황에 삐딱선을 타고 있었다. 그에게 가장 집중되고 기쁘고 시간가는 줄 몰랐던 행복의 시간은 늘 혼자있으며 노래가사 쓰고 기타를 튕기는 일이었다. 어깨 넘어로 기타를 배우고 책에서 본 코드진행의 기본 지식만으로 작곡을 해가며 그렇게 몰입은 돼갔다. 글을 쓰는 것이 아마도 그때의 노랫말이 큰 역할을 했던 것 같다.

그렇게 공부는 뒷전이 되었고 경기도 성남의 경원대 (현 가천대) 경영과에 진학하여 부모님의 가업을 이었다. 엄격했던 부모의 가르침에 언제나 나보다는 남을 먼저 생각하게 했으며, 부유했던 청년시절은 가업을 이어 무난히 보낼 수 있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세월만 보내던 어느 날, 사업의 약화로 더 이상 운영이 힘들어 정리를 하고 그후로 힘든 시기가 계속되었다.

이렇다할 재주도 기술도 없던 그에게 세상은 냉혹했다. 결국 모든 걸 탕진하고 망연자실에 놓이게 된다.그때 그에게 문득 날아 온 한 장의 편지, 그것은 그의 글의 인생에 전환점이 되었다. 그가 쓴 글에 용기를 얻고 감동을 받아 인생 역전을 하였다는 한 여인의 고맙다는 편지였다. 그 여인과 만나 고맙다는 말을 연신들으며 계속 글을 써 달라고 애원과 요청을 받는다. 그러나 그는 돈을 벌어야 했고 커가는 자식들의 아비로서 세상과 타협할 수 없었다.

그런식으로 세월은 빠르게도 흘러 지금의 그는 믁표를 가지고 하나하나 이루어가고 있다. 시인이 되어 시인을 만들고 작가가 되어 작가를 만든다. 신문사를 만들어 기자를 모집하고 문예왕국을 꿈꾼다. 아직 그에겐 이룰것이 많다. 그를 믿고 따르는 수백명의 작가 시인 일반인들을 위해 항상 무엇을 줄까고민하는 그에게 어떤 계획이 있을까?

[강건문화뉴스 백태현 대표 인터뷰]

" 아, 저는 말이죠. 일단 우리 소속 작가들이 다들 잘 됐으면 좋겠어요.
글은 솔직이 너무 가난합니다. 다른 문화 예술에 비해 그래서 저는 그것을 바꾸어 놓고자 합니다.
우리 작가들의 소설로 영화사를 차리고 예비작가들을 위해 문예대학을 세우고 끝으론 우리 작가들의 작품을 보존할 문화예술관 즉, 박물관을 사옥으로 짓는 게 최종 목표입니다. 허황된 꿈이라도 가져야 이루어질 수 있는거 아니겠나요. 시인, 작가, 기자는 이뤘습니다"

" 이 3박자의 기반을 바탕으로 영화사, 대학, 박물관을 이루기위해 부지런히 움직일 겁니다. 문화가 강해야 사회가 강해지니까요. 강건 문화사는 계속 전진만 있을 뿐입니다. 천천히 지켜봐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고 또한 여러분의 도움 없인 힘드니까 함께 이루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끝으로 저를 알고 함께 있는 모든 분이 행복해 졌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노익희 기자 gcns05@daum.net

<저작권자 © 금천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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