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setNet1_2

손 내밀기 - 윤 정 숙

기사승인 2023.09.10  20:46:57

공유
default_news_ad1
지난 장마 기간 중, 폭우에 잠긴 오송 지하차도 참사(慘事)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사람의 이야기는 감동을 넘어 가슴 뭉클한 감사와 함께 삶의 지향점을 제시했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중년의 가장인 듯한 그 사람은 지하차도에 들어선 지 얼마 안 되어 걷잡을 새 없이 밀어닥치는 물길 속에서 요행히 자동차 시동이 꺼지기 직전 차창을 통해 차에서 탈출, 승용차 지붕으로 올라섰다고 했다. 그러나 순식간에 목까지 차오르는 흙탕물 속에서 작은 스티로폼 조각을 붙잡고 생사(生死)를 다투고 있을 때, 트럭 지붕 위에 있던 한 남자가 팔을 뻗어 그를 트럭 지붕 위로 끌어당겼고, 죽음 직전 생명을 건졌다. 그렇게 살아난 그는 앞뒤 돌아볼 겨를 없이 거의 본능적으로 떠내려가는 두 사람을 향해 자기 팔을 다시 뻗었고, 그네들을 살려냈다. 선(善)순환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 경우는 생사를 가른 극한의 예이지만, 우리 모두는 알게 모르게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기도 하고, 또 누군가가 내민 손을 붙잡고 크고 작은 역경을 넘고 문제를 해결하거나 삶의 의미를 되찾곤 한다. 사실 알고 보면 누구랄 것 없이 우리 모든 인생들은 다 빚진 자라고 할 수 있다. 생명 자체는 말할 것도 없고, 의식주 중 아주 작은 부분 한 가지도 혼자 해결할 수 없음이 그야말로 ‘팩트’가 아닌가.
 
 나도 한평생을 살면서 많은 사람들의 손을 붙들고 여러 고비를 넘기며 오늘에 이르렀다. 그 중에도 6‧25 전쟁 중 나에게 도움을 준 두 분 은사님을 잊을 수 없다. 
 피난지 부산에서 중학교를 다닐 때 차마 내게 등록금 재촉을 못하시던 P선생님, 등록금 미납(未納) 결과 고등학교 진학이 거절되었을 때 밀린 등록금을 모두 대납해 나를 다시 학교에 다니게 해 주신 K선생님, 이 두 분 선생님이 아니었으면 아마도 내게는 영영 교육 기회가 없었을지 모른다. 50년대 그 가난하던 시절, 여자가 대학을 나왔다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안이 넉넉해서 가능했으리라고 지레 짐작한다. 하지만 내게는 청상(靑孀)의 어머니와 유일한 혈육 언니의 희생이 더해, 위 두 분 선생님께서 내미신 사랑의 손길 덕분에 그 엄혹한 시절 ‘대학생’이란 호사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이리 저리 받은 사랑의 빚 중 천만분의 일이라도 갚으며 살자는 게 삶의 신조이면서도 태생이 조막손인가 도무지 제대로 펴지지 않는 손을 늘 부끄러워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주변에 나이 많은 노인들, 그 중에도 가정 형편상 교육받지 못한 많은 할머니들이 있음을 본다. 대부분 가계(家計)를 돕고 남자 형제의 학비를 책임지다가, 결혼 후에는 육아 등 살림살이로 영일(寧日) 없는 한평생을 보내며 운명이라고 체념하며 산 분들이다. 이 중 적지 않은 할머니들이 뒤늦게 배움의 문을 두드려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 뒤늦게 깨친 한글로 질박한 시집을 묶어 낸 할머니들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었다. 이런 할머니들의 성취 뒤엔 분명 알게 모르게 도운 손길이 있었음이 분명하다. 가족들의 이해를 넘은 응원과 가르친 선생님의 헌신적인 수고의 결정체이지 싶다.
 
 평균 수명이 길어지면서 인생 이모작(二毛作)은 거의 필수사항이 되고 있다. 게다가 AI 등 세상이 급박하게 디지털화(化) 하는데, 교육을 받은 사람이든 아니든 재교육은 불가피하다고 생각된다. 시류(時流)에 맞추어 ‘평생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제공되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이 대학이나 정부 혹은 지방자치단체의 중요한 사업으로 시행됨은 고마운 ‘손 내밀기’라고 여겨진다. 잘 찾아보면 무료교육도 많고, 큰 비용이 들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요즘 각 자치센터에서 진행하고 있는 어학 등 문화 프로그램들은 윤택한 노후(老後)를 위해 준비된 게 많고, 잘만 활용하면 전문가의 경지에 이를 수도 있어서, 아주 고마운 교육 기회임이 분명하다. 나 역시 그중 한 프로그램에 참여해 몇 년째 문인화(文人畵)를 배우고 있다. 내밀어진 손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운명이 바뀐 예는 얼마든지 있다. 세상에 독불장군은 없다. 부지런히 내 팔을 뻗어 누군가의 도움의 손이 되게 하기도 하고, 내게로 뻗친 손길을  덥석 잡아 모처럼의 내 인생을 풍요롭게 할 일이다.
 
 그러고 보니 하느님께서도 우리 인생들을 위해 늘 손을 내밀고 계신다. 잡기만 하라고, 크고 비밀한 것을 네게 알려 주시겠다고. 우리 인간들에게 주신 자유 의지가 부디 궤도를 벗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 .

<저작권자 © 금천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default_setNet4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setNet5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