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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탄생 - 김성호(시인, 소설가)

기사승인 2023.06.03  21:4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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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을 내쉬고 있는 인생은 무슨 일이든 해야만 하는 의무가 주어져있다. 생계유지를 위해서든, 명예를 지키는 인성이든지 간에, 본분을 다하는 일은 품위를 높여준다. 그만큼 직업의 일은 누구에게나 생명처럼 절대적으로 고귀하다. 그 중에는 불꽃의 영혼을 불러들여 성취로 나아가는 인물이 있고, 누구는 하늘이 부여한 사명에 속이 뜨거워 어쩔 줄 모르도록, 그 의의에 미친 듯이 매달려 이웃들에 공익을 끼치기도 한다.
 
예술은 세상을 등지는 도피처가 아니다. 예술은 상상력과의 싸움이다. 예술인은 번뜩 트이는 영감의 날개가 꺾이면, 끝없이 추락하는 송두리 시름에 잠기게 된다. 죽어가는 고통의 된 신음이 남달리 처절하다. 이 어두운 염세 성 침륜에서의 구원은, 그 사람의 그때의 기분 상태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반나절 또는 하루 만에 깨어나는 정신력 예술인이 있는 반면에, 시간허비인 줄 모르고, 발길이 닿는 대로 아무 들판이나 봉우리 산을 무한정 넘나드는 파멸의 방황자도 있다. 두 부류 다 예술과 인생은 별개로 나누어진 현상이 아님을 드러내 보이는 행동이다. 어쩌면 예술과 인생을 하나로 융합하려는 고뇌의 몸부림일 수도 있다. 예술창작은 부동(浮動)의 골몰에서 그려지나, 그 층층의 완충은 대인관계에서 보완된다.
 
기후가 특색 한 사계절이 있듯이, 사람의 기분 상태는 언제까지나 일편 할 수는 없다. 인체는 수시로 변심-변화하는 감정기복에 시달린다. 10년을 매달린 노고가 무위하도록 일이 안 풀린다는 구덩이 속 좌절에 곧잘 빠져든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답안이 전무한 이러한 암담함의 영역에서는 촉진을 불러일으키는 매혹의 밝음은 생성될 수가 없다. 내부로 파고드는-시야가 온통 가려지는 이런 환경에서는 새로운 통찰을 안전하게 창의해 낼 수 없다는 현실, 경험 많은 사람들은 잘 알고 있을 터이다. 통찰은 눈으로 보이는 것 이상의 너머까지 들여다보는 안목의 의미가 담아져있다. 그래서 예술은 나이와 상관없이 항상 초보에 머물러있다고 생각한다. 미래를 전망하는 방법은 예술을 발견하는 것에 기인을 두고 있다는 점 강조한다.
 
세상에는 눈에 띄지 않는 예술재료가 얼마든지 널려있다. 순간순간 무엇을 보며 배운다는 것은 대단한 축복이다. 소재거리를 모으는 수집이기 때문이다. 존재가 명확한 사물들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것은 바깥을 향해서만 찾아낼 수 있다. 어떤 물체의 특징에 대하여 자세히 살펴보는 일이 관찰이다. 이보다 뜻이 깊은-꿰뚫고 들어간다는 관입(貫入)이 있다.
 
모델은 가상이다. 예술기반의 지향은 탁월한 함수에 달려있다. 천성적으로 타고난 재주의 재량이든, 지식 위에 지식이든, 책상을 뛰어 넘는 공중부양의 정신적 동원력이 최고조에 달해있으면, 예술의 발육은 펄펄 살아 오른다. 달이 차 무릇 익은 내부에서부터 아무 때나 수액(樹液)을 끌어올릴 수 있어야만 예술가로서의 진목 면 생활이라고 불릴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감정의 싹은 자기 안에서 틔워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으면 시간투자의 의미는 사라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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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자 © 금천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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