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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는 역방향이 없다 - 홍경흠

기사승인 2023.05.23  18: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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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실직을 했다. 멍하게 앉아서 이것저것 상념에 젖어 있는데 느닷없이 주인이 월세금을 올려 달라 했다. 예정된 일이지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셋째가 태어났다. 가족이라는 윤리와 사회와의 울타리를 새겨보니 눈이 아리다.
 
 등짝에 고이는 무게를 가족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제비꽃처럼 부활의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올라, 오늘도 하늘에 닿지 않는 말을 중얼거리며 피가 바짝 마르는 냉혹한 거리에서 배회하는데 몸속엔 푸른 나무가 무럭무럭 자랐다.
 
 가고 싶은 곳이 많았다. 이파리들이 싱글벙글 이기 때문이다. 겁에 질려 뒷걸음 칠 것이 아니라 내 삶을 꽃빛으로 바꿔줄 꽃밭도 가고 싶고, 몸속에서 이글거리는 태양이 요구하는 드넓은 우주도 가고 싶었다. 그런데 가지 못했다.
 
 웅크리고 있던 내 마음의 자물쇠를 열고 간 곳은, 돈에 한 번도 목메지 않은 금수저 친구였다. 손을 무릎에 얌전히 모으고, 침묵이 고이면 얼마나 무거운 마음을 갖게 되는지, 얼굴이 잘 보이는 높이로 마주 앉았다가 그냥 돌아섰다.
 
 별을 매만지는 밤이 왔다. 마음으로만 갈 수 있는 짧은 거리, 눈을 감으면 문턱을 넘고 있다. 새로운 길로 접어들 때마다 가라고 등 떠미는 아이들이 있었다. 어처구니없게도 가난의 지옥은 울지 못한 다는 거, 그러나 엉엉 울었다.
  
 바람에 온몸을 긁히며 하릴없이 붉어지는 낮술을 얻어마셨다. 온종일 입을 굳게 다문 날인데도 취기가 돌수록 또렷이 쌓이는 각종 고지서는 그렇다 치더라도 분유값과 월세금이 울면서 칼을 꺼내 든다. 한없이 떨고 있는 나는,
 
 대낮도 한밤중이다. 사방이 절벽인지라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어, 옴짝달싹 못하는 사이, 깨워도 일어나지 못하는 아이들, 눈물 머금은 힘 빠진 아내의 눈동자에 마음이 발기발기 찢긴 아침,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널 수밖에,
 
 어려울 때 도움을 주었던 친구들한테 가거나, 은행을 찾아보는 대신 두 발을 주머니에 넣어두고, 운이 좋으면 날아가는 새의 등을 탈 수도 있겠다 싶어서, 금수저를 다시 찾았다. 가는 도중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인간사가 떠올랐다.
 
 금수저는 가슴에 박힌 가시를 뽑아줄 요량인지? 내가 처한 시간의 벽 너머로 달려갔다. 이만한 술값이면 3개월 치 월세금인데, 1년 치 분유값보다 많은데, 생각하며, 투명한 목소리로 돈 좀 빌려 달라고 했다.
 
 단칼에 거절당했다. 스스로 구질구질한 나는 슬금슬금 돌아 나오는데, 금수저가 봉투 하나를 건넸다. 돈은 빌려줄 수 없지만 셋째 낳은 건 축하한다고. 하나의 얼굴에서 두 개의 얼굴을 보았다. 중력의 시간이다. 
 
 덧붙여 축하금이니 갚지 않아도 된다는 그 말에 고맙다는 말도 못하고 엉거주춤 너스레를 떨었지만, 새벽이 하루를 불러오거나 한밤중이 하루를 데려가도 쉼 없이 만물을 싹 틔우는 봄빛처럼 궂은일 마다 않고 땀에 젖었다.
 
 지금 생각하면 지옥이 따로 없었다. 6개월 치 월세금과 2년 치 분유값이 봉투에 들어있었다. 기억이 선명해지는 시간, 나도 금수저처럼 살아야겠다고 실천하면서, 쌓인 하루의 너무 많은 반복과 반목은 어느새 평범한 웃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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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자 © 금천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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