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setNet1_2

그의 생존법칙 -홍경흠

기사승인 2020.01.22  13:06:57

공유
default_news_ad1

                                             
 찬바람이 엷어지는가 싶더니 벌써 새해다. 나이가 한 살 더 먹었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깊이 생각해도 명쾌한 답이 없어 주저주저하는데,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어떻게 지낼 것이냐?”물었다. 논다고 말하기도 그렇고, 바쁘다고 말하기도 그래서,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데,“지난 날 다가올 날 붙잡고 서서 무늬를 쌓으며 살아라!”한다.

 어릴 적 까닭 없는 희망이나 막연함이나 그리움이나 동경이나 슬픔이 먼 산 너머까지 걸어가게 했다. 누구도 인생의 답을 주지 않기에 때로는 아파하고 절망하고 비관하고 차이다가 덧난 상처의 흔적들이 엉켜, 자신의 존재와 가치를 지키려고 고달파지고, 마침내 땅거미가 내리지 않는 신새벽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그는 이름 석 자에 어깨가 무거웠다.

 가녀린 초상을 응시하며 희망을 굳게 믿고, 그는 그 속의 그를 큰소리로 불러냈다. 산비탈 초가집에서 도시의 변두리 기와집으로, 다시 계단이 있는 붉은 양옥집으로, 가도 가도 닿을 수 없는 설익은 결과물에, 잘 익은 바람이 창을 열면 흥에 겨운 달과 별이 축가를 불러, 비로소 자유의 몸이라고 읊조려 본다. 그런데 고유성이 가끔 변종이 되어 스스로 깜짝깜짝 놀랄 때가 있다고,

 이런 것을 삶의 굴레라고 할까? 또다시 그 먼 자유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갈 수밖에 없다. 이때 본능적으로 햇빛이 어디에서 왔는가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지고, 햇빛을 다 쏟아낸 해가 매일 산 너머로 넘어가는 것은 빛을 재충전하기 위함이라는 생각에 이를 때, 설계도 허가도 없이 작은 부리로 잔가지와 지푸라기를 모아 하늘이 보이는 집을 짓는 새가 떠올랐다. 저 숲을 그래서 희망이라고 말하지,

 어림잡아 눈대중으로 아귀를 맞추면서 대문도 달지 않고 문패도 없는 집에 참 따뜻한 세상이 들어와 옹기종기 모여앉아 남몰래 잉태한 사랑이 수직 수평 혹은 동그랗게 훨훨 나는 자유의 몸이다. 눈부셔서 차마 볼 수가 없을 만큼 아름답다. 그게 그렇게 끝나면 얼마나 좋을까. 반드시 아니올시다가 촉수를 뻗치고 있다. 정반합(正反合)의 과정이랄까.

 느닷없이 천둥 번개가 치고 눈비가 내리거나 꽃눈이 터지거나 햇살이 데워주거나 힘 센 독수리가 공격하거나 이런저런 다툼과 난처함이 있다. 한마디로 숙명이다. 그 속에서 때가 되면 가고 태어나는 순환을 본다. 그 내력은 들여다보지 않아도 끝을 알 수 없는 소삽한 길, 그리하여 당도하는 곳은 모천이 아닐까 한다. 삶이 죄인지? 죄가 삶인지? 도통 모르겠지만,

 그러나 세상의 빛으로 산다는 것, 누구나 가능하다. 언제 어느 자리에 있어도 환한 빛이 된다는 건, 삶에 대한 소명의식을 성실하게 수행한다는 뜻이다. 이때 이기면서 행동하기보다는 지면서 행동하는 것이 뒤틀려지지 않는 직립이다. 성실함엔 모든 수모와 쓰라림이 도망치니까. 어쩌면 어리석지도 현명하지도 않게 사는 것이 비열한 힘으로부터 보호받지 않을까 한다.
 

, ,

<저작권자 © 금천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default_setNet4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setNet5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